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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을 무시했던 기자의 썰 | 20181210

FRNK_KIM 2018. 12. 10. 11:55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게 2007년 1월이다.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앱스토어를 통한 모바일 앱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팽창했다. 하지만 아이폰의 한국 출시는 2년 반이 훨씬 지난 2009년 10월에야 이뤄졌다. 개통 행사도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거창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나는 "대세는 아닐 거야"라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사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분당의 한 사무실에서 김범수 당시 아이위랩 의장을 만났다. 한게임으로 대박을 터뜨렸던 그는 네이버를 떠나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머물다 "아이폰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그해 3월 회사를 설립하고 돌아왔다. 첫 작품으로 SNS를 내놨다가 참패했다. 두 번째 앱인 메신저 앱 카카오톡을 만들고, (느낌이 좋았는지) 귀국 이후 첫 단독 인터뷰에 응해왔다. 

기자는 당시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카카오톡의 위력을 몰랐다. 질문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망한 SNS에 집중됐다. 김 의장은 인터뷰 도중 (답답했던지) 매우 피곤해했다. 그렇게 재미없게 인터뷰가 끝났다. 이후 김 의장은 회사 이름까지 카카오로 변경했다. '이름 바꿨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카톡 하려고 스마트폰을 산다고 했다. 대부분 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이폰 쇼크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 한국 경제에는 '한발 늦게' 충격으로 닥쳐왔다. 

아이폰과 카톡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진통 끝에 지난 7일부터 시범 서비스를 하는 카카오 카풀 때문이다. 

우버로 대표되는 '탈것의 혁명'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변방이다. 오래전부터 시대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로웠다. '모바일 다음은 모빌리티'라는 게 세계적인 흐름인데 지금 문을 열지 않으면 국산 모빌리티의 앞날은 없다. 

늦었지만 카카오가 시장논리에 몸을 맡긴 걸 환영한다. 기왕이면 택시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과 공존하는 룰부터 먼저 만들고 출발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발을 떼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그게 파괴적 혁신의 아픈 실상(實相)이다. 

[모바일부 = 이동인 기자 moveman@mk.co.kr]